171103
1
돌이켜보면 착각이 있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깨달은들, 앞으로도 우리는 그 달콤한 안개에 휘말리게 되는 것을 본능적으로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사랑의 착각놀음에 적합한 어리석음을 지니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다만 사랑에 관한 모든 착각에서 우리는 알랭 드 보통의 말처럼 너이기 때문이라는 단 하나의 실마리로 모든 오해를 풀어낼 수 있다. 두 사람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착각은 점차 착각이 아니게 된다.
이것은 사랑의 서사다. 앞으로도 우리는 착각에 휘말릴 것이고, 그곳에서 사랑을 피워낼 것이고, 너이기 때문에 오해를 풀어낼 것이다.
최유수, 사랑의 미학 7p
2
그 때처럼. 얼굴을 마주치면 심장이 쿵 내려앉고 불안했던 그 때처럼.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리고 자꾸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내가, 만약에 내가. 만약에 내가 떠날 일이 없었다면. 그랬다면. 그랬다면 우리는 뭔가 좀 바뀌었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괴롭다. 추억할 거리도 없는 사랑은 괴롭다.
3
어째서 당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가. 나는 원래 호감이라는 것에 굉장히 인색하다. 살면서 누군가를 좋아해본 경험이 별로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짧은 시간에 확신했던 것은, 내가 성적 끌림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살면서 처음 있는 일이었고 그 순간 뿐이었다. 어째서 그런 경험을 했는지도 지금 생각해보면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밤중, 침대에 누워 베개를 끌어안고 잠을 청하던 중 느꼈던 그 감정과 느낌. 그 이후론 다신 느낀 적 없지만 나는 아마 평생 그 날을 기억할 거 같다. 마치 내가 작년 S를 사랑했던 밤들을 추억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