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잖아. 중학교 때 너를 괴롭힌 힘 센 애들이 원망스러워. 중학생 때, 반지하에 살며 힙합에 빠져 우울함에 허덕이던 너를 기운차리게 할 생각은 못하고 나도 같이 허덕였던 지난 날들이 원망스러워. 괴로워하는 너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게 미안해. 너의 마음은 그 누구보다도 무거웠는데 그 앞에서 감히 내 우울함을 내비친 과거가 후회 돼.
어찌 생각하면 너는 환경이 참 안 좋았지. 그래. 그 나이엔 환경이 안 좋을 때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나도 마찬가지였고 너도 그랬지. 사실 너는 내가 아는 또래 중에 가장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었어. 그래서 너랑 연락이 그렇게 끊긴 후 널 원망했어. 나는 종종 지하철역에서 너를 만나는 생각을 했어. 손목을 잡든 손을 잡든, 어떻게 해서든 네가 세상과 분리 되지 않았음을 알려주고 싶었고 감히 내가 너를 도울 수 있을 거란 상상을 했어.
그런 상상들 끝에 나는 너를 잠시 잃었어. 너는 계속 내 흔적을 맴돌았지. 너는 내가 너를 불렀을 때 곧장 모습을 드러냈어. 네가 계속 내 흔적을 보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조금 안심했었어.
있잖아, 그 땐 몰랐어. 네가 그렇게 내 sns를 찾아보곤 했던 게, 어찌 생각하면 네가 5년이 넘도록 내가 유일하게 네 우울함을 털어놓을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는 걸. 그랬기에 너는 그렇게 옅었던 인연의 끈을 계속 붙들고 있었다는 걸. 나는 그저 네가 나와 함께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에 허망해했고, 계속해서 힘들어하는 너를 뒤에 두고 어떻게든 그 굴레를 벗어던지려고 용을 썼지. 그리고 내가 그 굴레를 벗어났을 때, 너는 사라졌어.
네가 죽었을 거란 생각을 하면 덤덤해. 그저 덤덤한데 명치 한 쪽이 조여와. 당장 네가 죽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아서, 의심조차 들지 않아. 널 찾고 싶은데 난 널 찾을 방법이 없어. 하다못해 네가 어디 사는지라도 알았으면 검색해봤을 텐데. 20세 김 모 군 ㅇㅇ구에서 스스로 목숨 끊어. 너는 네가 유통기한이 있는 사람이란 말을 남기고 사라졌지. 제발 아니길 빌었어. 지금도 빌고 있어. 하지만 넉 달이 지난 지금, 나는 점점 네가 살아 있을 거란 생각을 하기 힘들어져.
네가 자살했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네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 채 너를 내 마음대로 추모해야 할까.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한 내가 싫고 미안해. 그 때의 어린 너에게 충분한 위로를 건네지 못한 게 미안해. 너는 누구보다도 약했고 누구보다도 따뜻했는데. 아무도 너를 돕지 못했다는게, 결국 네가 그 속에서 질식했다는게, 그리고 그걸 나는 바라만 봤다는 게 미칠 듯이 가슴이 아파. 덤덤한데, 가슴이 아파. 사실 좀 많이 슬픈 거 같아. 아직도 생각해. 지하철역에서 너랑 내가 마주치는 거야. 멀리서 네가 어색하게 서 있고 나는 핸드폰을 한 손에 쥔 채 너한테 걸어가는 거야. 그리고 웃으면서 마주치는 거야. 감히 내가 너를 도울 수 있을 거란 그 거만한 상상은, 5년 전에도 5년 후에도 똑같았어.
살아있니. 살아있니, 친구야. 너를 도울 수 없었단 사실이 과연 언제쯤 분명해질까. 지금보다 더 분명해지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널 도울 수 있었을까. 아니면 나는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을까. 내가 뭘 할 수 있었을까. 너는 어떻게 살아왔을까. 살아있니. 죽었니. 늘 말하던 대로 자살했니. 네가 죽었으면 나는 어떻게 하지. 제발 돌아와 주면 좋겠는데, 설령 네가 돌아와도 그 깊은 우울함을 내가 감히 어떻게 위로할 수 있지. 하지만 네가 죽었다면 그 깊은 심연은 내가 어떻게 마주해야 하지. 나는, 나는 어떻게 해야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