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강의에선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종교에 대해 생각해보자면, 우선 나는 천주교 신자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독실한 신자는 아니다. 어릴 적,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부모님을 따라 성당을 다녔다. 아직도 기억나는 건 성당에 처음 가던 날 엄마가 나에게 '하느님 보러 가자'라고 하신 것이다. 나는 정말로 신을 볼 수 있는 줄 알고 신이 나서 따라갔다. 성당에 가면 문 앞에서 하느님(내 머릿속에선 예수님의 이미지였다)이 한 명 한 명을 맞아주는 줄 알았다. 하지만 문 앞에 아무도 없어서 나는 실망했고, 미사를 들으면서는 신부님이 미사를 드리는 모습에 오늘은 하느님이 안 오셨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 뒤에 있는 청소년 신도들을 보고 괜히 하얀 옷에 천사라고 착각해서 하느님이 아프셔서 천사들이 대신 왔구나 라고 생각했고, 미사가 끝나면 천장이 열리며 천사들이 날아갈 거라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이런 경험이 나의 첫 종교 활동이었기에, 나는 매주 성당을 나가면서도 '신은 없다'라고 생각하곤 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나는 배신 당했다. 늘 나는 하느님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내가 잘못 된 일을 할 때면 하느님이 하늘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가끔은 겁을 먹기도 했고 다리에 쥐가 나거나 몸이 간질거리면 하느님이 나를 쓰다듬으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성당을 다니며 나는 신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나는 결국 신앙심 없이 성당을 다니게 되었다. 매주 성당을 나가고 교리 수업을 들었으며 가끔 마음이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 도와달라고 빌곤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같이 성당을 다니던 친구들 만큼의 신앙심이 없었다. 그 만큼의 열정도 없었고 믿음도 없었다. 무신론자도 아니고 천주교 신자였으며 세례까지 받아 '글라라'로 불리며 살아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지금에 이르러서. 나는 성당을 다니지 않는다. 더이상 나를 글라라라고 불러 주는 사람도 없고 힘든 일이 있어도 신을 찾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누군가가 종교를 물으면 천주교라 하고, 마음이 심란하거나 정말로 바라는 일이 생기면 성당을 찾곤 한다. 나에게 있어 종교란 무슨 의미일까. 가끔 생각하곤 했지만, 오늘 강의를 들으면서는 더욱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힘든 일이 있으면 결국 종교를 찾게 된다. 인간의 힘, 나 자신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느껴지는 일이 생길 때 나는 무력해지지만 굴하지 않고 나의 의지를 넘어선, 어떠한 초월한 존재의 도움을 찾기 시작한다. 그게 나에게 있어서는 신인 것이다. 비록 나는 신에게 기도를 올리지 않는다. 식전 기도를 하지도 않고 아침에 엄마처럼 기도를 드리지도 않는다. 마리아상을 보았을 때 인사를 하지도 않고 헌금을 한 번도 천 원 이상 낸 적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신을 믿는 것이다. 정말로 신이 있다면, 그리고 모두의 말대로 그 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그는 바라는 것 없이 아가페의 형태로 날 사랑해주며 베풀 것이다. 내가 필요로 할 때마다 그는 나에게 위안을 주고 평화를 줄 것이다. 이것이 나에게 있어 신의 의미이다.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믿는다, 라는 것은 나 자신의 믿음에 확신을 갖는 것이다. 망설임이나 주저함 없이 내가 믿는 사실을 굳게 의지하며,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되새기는 것. 이 생각 자체가 나에게 있어선 종교 활동이다. 나는 나의 종교를 믿는다. 나를 사랑하는 신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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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듣고 제출한 감상문. 아무 말이나 막 쓰긴 했지만 전반적인 의견은 결국 내가 그간 해온 생각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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