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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랜만에 병원에 갔다 왔다. 원하는 방향의 상담은 진행되지 않았다. 내가 솔직하게 말하지 않은 점도 있지만 어쨌거나 상담은 짧았다. 나는 작년과 비슷했다. 집에 가지 않고 바깥에서 빙빙 돌았으며 상담 시간에 머뭇대고 무언가를 말하고도 후회했다. 결국 약을 처방받고 나왔지만 나는 모든 것에서 분리 된 기분을 지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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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듣다가 문득 깨달음을 얻었다. 깨달음이라고 해야 할까, 결국 이 상황을 내가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다른 것에 몰두하는 거란 걸 알게 된 거 같다. 그리고 그 방법은 놀라울 정도로 가깝고 쉬웠다. 영화와 책. 영화에 대한 특강이었기에 다양한 클립을 보았는데 내가 아는 영화도 있었고 처음 보는 영화도 있었다. 어쨌거나 그런 영화의 장면 장면들을 보며 나는 살짝 울컥했다. 저 속에 있는 감정선들은 격하든 잔잔하든, 괴롭든 행복하든, 결국에는 끝이 있다. 하지만 내 이 고통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내가 영화를 좋아했었구나, 하고 새삼 느꼈다.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도 다시 영화로 도망가야 할 것이다. 한 영화가 끝나고 느껴지는 허무함에 슬플 지라도, 그 영화를 다시 보며 허무함을 벗어던지고 현실에서 분리되어야 할 것이다. 모든 걸 보지 않기 위해, 어느 것에도 신경을 끌리지 않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