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물리를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역학은 정말 드럽게 싫어했는데, 그 덕에 고등학교 2학년 물리1을 처음 배울 때까지만 해도 내가 물리를 이렇게 좋아하게 될 줄은 몰랐다. 공통과학을 배우면서 내가 우주 쪽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알았지만 그게 물리라곤 생각도 못할 만큼 무지했다. 물리가 처음으로 재밌다고 느꼈던 건 사고 후 들어간 수업이었다. 그 때 우리 반은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배우고 있었는데 지난 주 수업을 빠진 덕에 나는 선생님이 칠판에 써주시는 많은 수식들이 뭔지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혼자 수업시간 내내 교과서를 읽었다. 고등학교 때 배울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한 내용들이 나와 있었다. 그걸 보면서 나는 왠지 마음이 안정됐다.

 그리고 조별 과제로 상대성 이론을 조사하면서 나는 책을 꽤 여러 권 읽었다. 한 여섯 권 가량 읽은 거 같다. 재밌었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거기서 판타지를 찾은 거 같다. 과학 이론인데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그 사실들이, 꼭 SF소설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재밌었던 거 같다.

 내가 관심이 있었던 건 상대성 이론 자체였지만, 어쨌거나 그 이론 덕에 물리에 흥미를 붙인 후 나는 물리를 열심히 공부했다. 어째서인지 반에서도 물리를 가장 열심히 하는 애로 인식되고 있었고 절대 친해질 일 없을 거 같던 물리 선생님과도 가까워졌었다.

 고등학교 시절을 관통하는 단어는 아마 여러 개 있다. 내겐 나름 다양한 일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중에서도 굵직한 것 몇 개를 뽑자면 그 안엔 분명 물리가 있다. 공부 자체가 재밌다고 느낀 게 처음이었다. 고삼 때 내 생기부를 보면서 새삼 물리밖에 없는 게 웃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뭔가에 그렇게 열의를 가질 수 있단 걸 그 때 처음 알았다. 그 점에서 충분히 의의가 있었다.

 대학에 와선 모든 것에 흥미를 잃었다. 나는 물리학을 배우지 않고 내가 그렇게 좋아했던 과학 교양서를 읽을 일도 없다. 읽을 의지도 남지 않았다. 그래도 종종 고등학교 물리 필기를 떠올리며 생각한다. 앞으로 이렇게 공부를 즐겁게 할 날이 올까.

'2017' 카테고리의 다른 글

170929  (0) 2017.09.29
170926  (0) 2017.09.26
170925  (0) 2017.09.25
170923  (0) 2017.09.23
윤혜  (0) 2017.09.18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