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사에 초연하다는 게 저런 걸까. 나는 윤혜를 보며 종종 생각했다. 검은 단발 머리에 옅은 화장을 한 윤혜는 표정이 풍부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항상 무표정으로 다니는 것도 아니었지만, 말간 얼굴은 늘 가벼운 수준의 미소만을 띠었다. 사실 윤혜가 다양한 표정을 보일 만큼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편도 아니긴 했다. 학교에서 윤혜는 거의 혼자 있거나, 두세 명 정도와 있었다. 누군가랑 같이 있을 때도 활발히 나서서 말하기보단 가만히 듣는 축에 속하였고 간간히 옅은 웃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감정 표현이 다양하지 않다, 인간미가 없다. 그게 내가 정윤혜를 보며 느낀 점들이었다.

 원래 나는 남에게 관심이 그리 많은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같은 과라는 것 외엔 접점이 일절 없는, 학교에서도 존재감이 거의 없다시피 한 윤혜를 주시하게 된 것은 갑자기 쏟아진 비에 모두가 와르르 소리를 지르며 건물로 뛰어들던 날이었다.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던 나는 갑자기 창문을 후두둑 때리는 비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금세 편의점 안은 비를 피해 우산을 사러 온 사람들로 인사불성이 되었고 나는 조금 불편한 마음으로 남은 라면을 마저 집어삼켰다. 선 자세로 불편하게 고개를 처박고 라면을 먹던 내 옆에 누군가가 섰다. 무례하지 않을 만큼만 살짝 시선을 준 나는 그게 우리 과라는 걸 알고는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인사조차 하지 않는 과 동기. 그 정도 사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는 얼굴이어서 그런지 바로 옆에 선 사람이 불편하지 않았다. 회색 후드를 벗어 가볍게 젖은 머리카락을 한두 번 손으로 탁탁 털고 귀 뒤로 넘긴 윤혜는 카드지갑을 꺼내 지폐들을 뒤적거렸다. 흐린 날, 새하얀 편의점 조명. 그 아래에 낙낙한 품의 후드를 뒤집어 쓴 작은 체구의 말간 얼굴.

 윤혜의 손에는 캔맥주 하나와 작은 우산이 들려 있었다. 케이스에 달린 태그를 잠시 만지작거리던 윤혜는 따로 떼낼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건지 그대로 우산 케이스를 주머니에 구겨넣곤 캔맥주를 깠다. 옆에 과 동기가 있다는 걸 알긴 할까. 하기사 별로 그런 걸 신경 쓸 애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한 시, 윤혜는 500cc 캔맥주를 그 자리에서 들이키곤 사라졌다.

 그 모습이 내겐 굉장히 독특하게 여겨졌다. 혼자 술을 먹는다거나 하는 행동이 독특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다만 나는 그 주변 사람들의 존재를 지워버린 듯한 검은 두 눈이 감정을 띠는 순간이 궁금했다.

 그 전까진 눈에 띄지 않던, 말 그대로 무채색 같던 아이였는데 어느샌가부터 윤혜는 내 눈에 자주 들어오곤 했다. 늘 얌전히 얇은 입술을 다물고 어딘가를 주시하는 두 눈. 새삼 정말 눈에 안 띄게 생겼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남 얼굴을 평가하고 싶진 않지만 굳이 요목조목 뜯어보자면, 곱게 생긴 얼굴이었다. 어른들이 좋아할 법한 수수한 얼굴. 외커풀이지만 작은 눈은 아니었고 말랐지만 조금 동그란 얼굴형은 다가서기 어려운 인상은 아니었다. 말간 피부에 작은 체구 덕에 어려 보이기도 했고. 그런 외모 덕분에 더더욱 지금까지 수수하게 지내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동글동글한 이목구비에 눈에 띄지 않는 얌전한 인상.

 윤혜의 다양한 얼굴이 궁금해서 주시했던 것이지만 윤혜는 좀처럼 감정 변화를 보여주지 않았다. 대학 생활에 큰 뜻이 없는 것 같았다. 고등학교 때는 어땠을까? SNS에 검색해서 나온 윤혜의 계정은 깨끗하기만 했다. 죄다 친구 공개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윤혜는 적어도 학교에 나오는 평일이면 하루에 한 번은 내 앞에 나타났다. 늘 같은 무표정한 적의 없는 얼굴로.

 그리고 한 번은 길가에서.

 버스정류장 근처에 서 있던 나는 살짝 몸을 떨었다. 이 동네는 밤안개가 정말 자주 꼈다. 그 날도 마찬가지였다. 당연하다는 듯 조금은 뿌옇게 빛나는 조명들. 금요일 밤이라 그런지 사방이 시끌벅적했다. 몸이 안 좋다는 핑계로 술자리를 일찍 뜬 날이었다. 정류장은 학원이 끝났는지 고등학생 여섯 명 정도가 차지하고 있었다. 시끄럽게 떠드는 모습에 '좋을 때다'하고 속으로 한 번 생각한 나는 그 너머로 보이는 검은 후드집업을 보았다. 후드를 뒤집어 쓰고 터덜터덜 걸어오는 작은 체구는 너무도 익숙한 모습이었다. 정윤혜? 조금 더 가까워지자 확실히 윤혜였다. 하얀 얼굴은 마찬가지로 술을 좀 걸쳤는지 홍조를 띠고 있었고 두 손은 주머니에 꼭 넣어둔 채였다. 터덜터덜 걷는 윤혜의 얼굴은 기운이 없어보였다.

 윤혜는 정류장을 지나쳐 그대로 내 쪽으로 걸어왔다. 같이 있는 친구들조차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티 안나게 윤혜를 보던 나였지만, 그 날은 술 기운 때문이었을까. 나는 멀리서부터 느릿느릿 걸어오는 윤혜를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윤혜가 바로 내 앞에 설 때까지도. 느리던 걸음은 내 앞에서 완전히 멈추었다. 바닥을 보고 있던 윤혜의 두 눈이 천천히 나를 올려다 보았다. 키가 몇이지. 그렇게 가까이서 본 게 편의점에서 말고는 처음이었다. 160은 될까.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윤혜의 다물려 있던 입술이 벌어졌다.

 "안녕."

 뜻밖의 인사였다. 술 기운이 아니었으면 아마 건네지 않았을 인사였다. 윤혜의 기운 없는 두 눈은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늘을 보는 게 두렵다는 듯이, 윤혜는 의식적으로 시선을 아래로 하고 있었다. 있잖아. 이렇게 가까이서 듣는 목소리도 처음이었다. 생긴 것과 달리 조금은 낮고 어른스러운 목소리였다.

 "나는 우주가 무서워."

 윤혜의 얇은 입술이 도로 다물렸다.


우주공포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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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있잖아. 중학교 때 너를 괴롭힌 힘 센 애들이 원망스러워. 중학생 때, 반지하에 살며 힙합에 빠져 우울함에 허덕이던 너를 기운차리게 할 생각은 못하고 나도 같이 허덕였던 지난 날들이 원망스러워. 괴로워하는 너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게 미안해. 너의 마음은 그 누구보다도 무거웠는데 그 앞에서 감히 내 우울함을 내비친 과거가 후회 돼.

 어찌 생각하면 너는 환경이 참 안 좋았지. 그래. 그 나이엔 환경이 안 좋을 때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나도 마찬가지였고 너도 그랬지. 사실 너는 내가 아는 또래 중에 가장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었어. 그래서 너랑 연락이 그렇게 끊긴 후 널 원망했어. 나는 종종 지하철역에서 너를 만나는 생각을 했어. 손목을 잡든 손을 잡든, 어떻게 해서든 네가 세상과 분리 되지 않았음을 알려주고 싶었고 감히 내가 너를 도울 수 있을 거란 상상을 했어.

 그런 상상들 끝에 나는 너를 잠시 잃었어. 너는 계속 내 흔적을 맴돌았지. 너는 내가 너를 불렀을 때 곧장 모습을 드러냈어. 네가 계속 내 흔적을 보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조금 안심했었어.

 있잖아, 그 땐 몰랐어. 네가 그렇게 내 sns를 찾아보곤 했던 게, 어찌 생각하면 네가 5년이 넘도록 내가 유일하게 네 우울함을 털어놓을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는 걸. 그랬기에 너는 그렇게 옅었던 인연의 끈을 계속 붙들고 있었다는 걸. 나는 그저 네가 나와 함께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에 허망해했고, 계속해서 힘들어하는 너를 뒤에 두고 어떻게든 그 굴레를 벗어던지려고 용을 썼지. 그리고 내가 그 굴레를 벗어났을 때, 너는 사라졌어.

 네가 죽었을 거란 생각을 하면 덤덤해. 그저 덤덤한데 명치 한 쪽이 조여와. 당장 네가 죽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아서, 의심조차 들지 않아. 널 찾고 싶은데 난 널 찾을 방법이 없어. 하다못해 네가 어디 사는지라도 알았으면 검색해봤을 텐데. 20세 김 모 군 ㅇㅇ구에서 스스로 목숨 끊어. 너는 네가 유통기한이 있는 사람이란 말을 남기고 사라졌지. 제발 아니길 빌었어. 지금도 빌고 있어. 하지만 넉 달이 지난 지금, 나는 점점 네가 살아 있을 거란 생각을 하기 힘들어져.

 네가 자살했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네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 채 너를 내 마음대로 추모해야 할까.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한 내가 싫고 미안해. 그 때의 어린 너에게 충분한 위로를 건네지 못한 게 미안해. 너는 누구보다도 약했고 누구보다도 따뜻했는데. 아무도 너를 돕지 못했다는게, 결국 네가 그 속에서 질식했다는게, 그리고 그걸 나는 바라만 봤다는 게 미칠 듯이 가슴이 아파. 덤덤한데, 가슴이 아파. 사실 좀 많이 슬픈 거 같아. 아직도 생각해. 지하철역에서 너랑 내가 마주치는 거야. 멀리서 네가 어색하게 서 있고 나는 핸드폰을 한 손에 쥔 채 너한테 걸어가는 거야. 그리고 웃으면서 마주치는 거야. 감히 내가 너를 도울 수 있을 거란 그 거만한 상상은, 5년 전에도 5년 후에도 똑같았어.

 살아있니. 살아있니, 친구야. 너를 도울 수 없었단 사실이 과연 언제쯤 분명해질까. 지금보다 더 분명해지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널 도울 수 있었을까. 아니면 나는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을까. 내가 뭘 할 수 있었을까. 너는 어떻게 살아왔을까. 살아있니. 죽었니. 늘 말하던 대로 자살했니. 네가 죽었으면 나는 어떻게 하지. 제발 돌아와 주면 좋겠는데, 설령 네가 돌아와도 그 깊은 우울함을 내가 감히 어떻게 위로할 수 있지. 하지만 네가 죽었다면 그 깊은 심연은 내가 어떻게 마주해야 하지. 나는, 나는 어떻게 해야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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