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인복이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미술 치료 중 선생님께 그런 말을 들은 이후론 자주 생각하게 됐다. 나는 인복이 있구나, 하고.
 어찌 생각해보면 내게 좋은 사람은 항상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먼저 쳐내고 벽을 치고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이러저러한 행동을 통해 스스로를 고립시켰을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중학교를 같이 나온 친구들과는 지금까지도 친하지만 중학교 3학년 때 내가 한 명과 사이가 틀어지며 우울증이 올 정도로 심각해졌을 때 내 말을 들어준 친구는 없었다. 나는 그 때 일에 큰 상처를 받았었고 그 후로 인터넷에 매달리게 됐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던 내 친구들 대신 인터넷 상으로 알게 된 연상의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곤 했고 나는 인터넷 상에서의 내 자아와 현실에서의 내 자아의 차이에 다시 우울증이 심해졌다.

 거기서 벗어나게 해준 게 지금 친구들이다. 마음을 터놓고 내 속 얘기를 할 수 있게 됐고 우울해도 함께 있으면 마음이 가벼워졌다. 친구들이 없었으면 아마 나는 나 역시도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모른 채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즐겁지 않은 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있게 행복하다, 기분 좋다 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올해가 되어서였다. 물론 방학 중 심해진 우울증과 불안장애로 치료를 받고 있긴 하지만 어쨌거나 나는 내 현재 상황이 행복하다는 걸 안다.

 그리고 오늘 나는 새삼 내 주변이 아닌, 조금 먼 곳에서 또다른 친구를 찾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고 내게 조금씩 도움을 준 친구인데 나는 그 친구가 나를 그렇게까지 편하게 생각하고 믿는 줄 몰랐다. 오늘 초콜릿과 편지를 받고 조금 마음이 붕 떴었다. 나는 지난 몇 년간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누군가는 내게 이렇게 도움을 받고 나를 좋아해줬구나. 이 친구 뿐만 아니라 나랑 같이 병원을 다니고 있는 친구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처음 자신이 우울증임을 알려줬고 그 후로도 힘든 일이 있으면 내게 털어놓곤 했다. 처음엔 의아함이 들었다. 오래 알고 지내긴 했지만 나와 그 정도로 마음을 트고 지낸 친구는 아니었기에. 하지만 그 친구를 도와주고 위로해주며 새삼 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의지하는구나. 나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었구나.
 이 외에도 몇 명이 더 있다. 이렇게나 여러 명이 나를 의지하는 걸 알고 나서야 나는 내게도 가치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살면서 나는 늘 나를 깎아내렸다. 외모, 성격, 하물며는 목소리까지도. 남들이 아니라고 해도 이미 내 마음 속에서의 내 모습은 초라하고 어설픈 허약한 사람이었는데 생각해보면 이번 한 해 동안 내 자신에게 조금 자신이 생겼다. 내 주위에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았고 그만큼 나에게 자신의 속을 털어놓는 사람도 많다는 걸 알았다. 내가 누군가에게 편안함을 주고 안식처가 될 수 있음을 알았다.
 나는 분명 행복해질 수 있는 가치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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